다윗의 기름부음

다윗의 기름부음

기름부음 받는 다윗 (사무엘상 16:1-23)
출처: 차용철 목사 (http://opendoor.or.kr/chnet2/ccast/sub/gesi.php?gfile=view&code=worship03c&no=86&start=690&)

13장에서 사울왕이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를 앞두고 교만해져서 사무엘의 지시를 어기고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이 폐위(廢位)를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15장에서 아말렉 진멸에 대한 명령을 불순종하여 거역했을 때 폐위를 확정적으로 선고했습니다. 이제 16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위시키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기름 붓는 내용이 나옵니다. 구조는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 (1-3절), 기름부음 받은 다윗 (4-13절), 다윗의 왕궁 출입 (14-23절)로 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 (1-3절)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폐위될 것을 생각하여 심히 슬퍼했습니다. 개인적인 관계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유다 백성의 미래를 생각해서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명령을 내립니다. 사울을 대신하여 왕이 될 자를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중에서 선택했으니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 이새를 청하고 하나님이 알게 하는 자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기름부음 받은 직분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었습니다. 기름을 부은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이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여 왕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신다는 표징으로 행하게 한 의식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Anointing)은 성령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성령의 임재(臨在)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내주(內住,Indwelling presence)와 성령의 현재(顯在,manifest)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성령의 내주 는 성령 세례 라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고, 성령의 현재 는 성령충만 이라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특수하게 사용된 경우도 있음). 성령의 내주 는 주로 바울서신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의미이고, 성령의 현재 는 사도행전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성령의 내주 는 신자 안에 거하시는 임재 방식이고 (εν πνευμα), 성령의 현재 는 신자 밖에서 역사하는 임재 방식입니다 (επι πνευμα). 성령의 내주 는 은밀하게 내적으로 확인되는 경험이고, 성령의 현재 는 외적으로 체험되는 경험입니다. 성령의 내주 는 구원받은 모든 신자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임재이고, 성령의 현재 는 신자에게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특수한 임재입니다. 성령의 내주 는 신자의 신분과 관련된 임재이고, 성령의 현재는 신자의 사역과 관련된 임재입니다. 성령의 내주 는 성령의 열매와 관련이 깊고 성령의 현재 는 성령의 은사와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왕에게 부어진 기름부음은 사역을 위한 임재 방식인 성령의 현재 라 할 수 있습니다.

2. 기름부음 받은 다윗 (4-13절)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제사드릴 제물을 준비하여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맞으러 나온 성읍 장로들과 이새의 식구들을 제사에 청하였습니다. 이새와 그 아들들이 올 때에 사무엘은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고 마음 속으로 그가 기름부을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모를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에게 외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외보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본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마음]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아비나답을 앞으로 지나가게 했으나 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번째 삼마를 그 앞으로 지나가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일곱번째까지 지나가게 했으나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여덟번째인 다윗은 그 자리에 참여하지 않고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물어 막내가 양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를 데려왔는데 보니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사무엘은 그가 하나님이 지시하는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그를 감동시켰습니다.

다윗의 용모는 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용모는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던 용사로서의 준수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서의 자격을 이방 왕과 같이 풍채의 준수함을 요구하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는 분입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설교할 때 내용을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행13:22). 시편 기자는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고 했습니다 (시89:20). 내 마음에 합한 사람 내 뜻을 이룰 사람 내 종 다윗 등의 표현은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적 계획 안에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자라는 의미입니다 (행13:23). 그런 점을 볼 때 다윗은 늘 양을 치면서도 하나님의 언약 성취와 하나님 나라 회복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흠모할만한 외모는 없었으나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최 우선으로 생각하고 순종하는 분이었습니다 (사53:2, 빌2:6-8, 요4:34).

3. 다윗의 왕궁 출입 (14-23절)

①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났습니다.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神)이 떠나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했습니다. 여호와의 신 은 성령을 말합니다. 사울에게 임한 성령은 성령의 내주(內住)가 아니라 성령의 현재(顯在)였습니다. 사울에게 성령이 임한 것은 그가 신자임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직임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와 능력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사울에게 성령이 부은 바 된 것은 이스라엘의 왕직을 수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므로 성령이 그에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직임을 감당하게 하기 위한 성령의 은혜는 직임을 감당하지 않을 때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겸손하여 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시고 일을 맡기실 때는 그에 따른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불순종할 때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고 그 사람에게서는 빼앗습니다. 일을 빼앗을 때는 당연히 직임에 따른 성령의 은혜도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②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을 번뇌케 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을 떠나자 악신(惡神)이 그를 번뇌케 했습니다.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그에게서 떠나자 사단의 영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악령이 사울을 번뇌케 했습니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한 것입니다. 악령은 영혼을 피폐하게 할 뿐 아니라 마음을 괴롭게 만듭니다. 초조해 하고 두려워 하고 번민케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악령들이 지배하게 되고 악령이 지배하게 되면 마음이 극도로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근심과 걱정과 번민과 초조함과 우물함과 두려움이 생길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악령들도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허락한 자들만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악령들이 다시 떠나게 됩니다.

③ 다윗이 사울을 위해 수금 탈 자로 천거받았습니다.

사울이 악신으로 번뇌하자 신하들이 수금을 탈 자를 불러다가 수금을 타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했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천거했습니다. 그를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고 추천했습니다. 호기(豪氣)와 무용(武勇) 은 그의 용맹스런 면을 말하고 구변(口辯) 은 그의 분별력있고 현명한 면을 말하고, 준수(俊秀)함 은 외모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사울은 외모에서 풍채가 건장하고 정신력은 약합니다. 그에 반해 다윗은 외모가 여성적이고 정신력은 강합니다. 사울은 그를 보고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병기 잡은 자로 삼았습니다. 병기 잡은 자 는 상관의 칼이나 방패를 들고 다니는 자로서 부관에 해당하는 위치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병기를 잡은 자로 삼은 것은 다윗의 총명과 무예와 용모를 인정하고 큰 신뢰를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④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에게서 악신이 떠났습니다.

수금은 당시 많이 사용하는 현악기입니다. 다윗이 수금으로 찬양할 때 사울을 지배하던 악령이 떠났습니다. 악기나 음악 자체에 능력이 있었다고 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다윗에게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13절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찬양한데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성령의 임재하심이 나타나고 성령의 임재가 있을 때에 악령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떠나가게 됩니다. 시편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양 중에 악령이 물러가고 찬양 중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찬양 중에 환경이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행16:25-2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119:164, 146:2, 150:6).

사울에게서 하나님이 떠나고 악신이 함께 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울은 번뇌했고 그를 본 신하들이 다윗을 천거합니다. 다윗을 본 사울은 다윗을 자기 수하에 두어 병기잡은 자로 삼았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수종 들면서 그 앞에서 수금을 타자 악신이 떠나갔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 흐름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가시화(可視化)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폐위시키고 다윗을 등장시키기 위해 섭리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낮추면 낮아지지 않을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높이면 높아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본장의 교훈 
출처: 합정동교회( http://hjdc.net/jesus/board_iDiK57/3493)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점검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 사람의 마음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성도는 이제 교만하고 죄악된 마음을 버리고 경건하고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았음을 감사하자.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성령의 크신 감동을 받았다. 신약성도는 성령의 내주(內住)하시는 복을 얻었다. 우리는 영원히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위로 격려하시고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며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힘을 공급하시는 성령님께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자. 하나님의 영은 사울을 떠나셨고 그의 부리신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하고 괴롭게 했다. 그것은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범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떠나시고 버리신 자는 비참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살고 하나님의 버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