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갈라디아설 vs 북갈라디아설

남갈라디아

배경설명:
본서가 쓰일 당시 갈라디아교회에는 율법주의 이단이 침투해 와서,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하며 특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므로 바울은 이 서신에서 율법주의 이단을 강하게 정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과 그 복음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참 자유에 대해 밝히 증거한다.
갈라디아교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세워진 이방교회이다. 그런데 이교회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1)신앙생활을 잘 하던 이들이 거룩한 성도로 살지 못하고 윤리적으로 교회밖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게 되고 이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변화되었다가 다시 옛모습으로 회귀한 것이다.
(2)유대주의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윤리를 강조하게 되고 할례, 음식규례와 절기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게 된다. 유대인들의 우월의식도 한 몫하게 되는데 특히나 할례의 문제는 어른이 된 성도들에게는 난감한 문제였다. 결국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신분 구분과 갈등이 증폭되고 만다.
(3)이러한 주장들이 제기되므로 인해 바울이 전한 복음이 휘청거리고 교회는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에 끌려가는 문제들이 생긴다.
이런 소식을 접한 바울은 격앙된 마음으로 서신을 쓰면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새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니 엉터리 주장에 현혹되지 말고 바른 복음 위에 서라는 내용의 서신을 쓴 것이 갈라디아서이다.

바울의 전도여행:
(1)제1차(A.D. 45-47/A.D.46-48): 제1차 선교 여행 동안에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비시디아),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지에 교회를 세웠다(행 13:14-14:23)
예루살렘 총회(A.D.49): A.D. 49년경에 개최된 예루살렘 총회는 비유대인들에 대한 그와같은 요구를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행15:1). 이같은 문제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게 되는데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결국 이 총회에서 이방인 성도들이 최소한의 몇 가지만 삼가해 줄 것을 결정하고(행15:19-21,28,29), 바울과 바나바, 바사바와 유다와 실라를 통하여 이방 교회에 전달하도록 하였다(행15:22). 이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고자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본다(A.D.49). 
(2)제2차(A.D.50-52):  총회가 끝난 직후 바울은 그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출발하였는데, 이때 실라가 동행하였다. 그들은 먼저 바울이 1차 여행때에 조직한 남부 갈라디아의 교회들을 재방문하였다. 네 교회 중에 셋이 특별히 언급되었다.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행 16:1-5). 그 다음에 그들은 브리기아와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했다(6절).
(3)제3차(A.D.53-58): 바울은 그의 제3차 여행의 초기, 즉 A.D. 53-54년 경에 다시 한번 갈라디아를 방문하였다.

남갈라디아설 (1차여행 직후기록설): 현대적견해
이 남갈라디아설은 19세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이다. 사도행전에 그 당시 중요한 논쟁이 있었던 북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을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을 지지한다. 갈라디아서에는 바울이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에 갈라디아 교회들을 처음 방문하였다고 하였는데(갈4:13), 이는 건강의 회복기에 있는 환자로서 지형이 매우 험악한 북쪽 지역을 말하기 보다는 남쪽지역일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자기 세운 교회들을 언급할 때 교회가 위치해 있는 행정구역의 명칭들을 사용하였으므로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그 행정구역에 속해 있는 교회의 사람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바나바의 이름이 갈2장에 세번이나 기록되었는데 이는 그가 남갈라디아 교회들에 개인적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갈라디아설에 대하여는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수신지인 갈라디아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 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수리아 안디옥에 머물때, 곧 예루살렘 공회가 있기 전인 A.D. 48-49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수신자는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 때에 선교하였던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와 더베’ 지역과 같은 남부갈라디아 지역의 사람들이라는 견해를 ‘남갈라디아설’이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이다.
이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서 2장 1-14절에 기록된 사건들이 있은 후에 기록되었음이 틀림없다. 만약 사도행전 15장에 묘사된 예루살렘 총회가 이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이 편지는 1차 여행이 끝난 뒤에 기록되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총회는 1차 여행과 2차 여행 사이에 개최되었기 때문이다(행 15:36-41).
남 갈라디아설이 받아들여진다면 기록 연대가 A.D. 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예루살렘 총회에 관하여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까닭에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게 된 것이다.  비교적 이른시기에 쓴 서신으로 보는 견해이며, 선교초기부터 바울은 이미 칭의에 대한 사상들이 정리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편지서의 기록 장소로서 고린도를 내세우는 이유는 바울이 고린도를 세번째 방문하였을 때 기록한 로마서와 이 편지서가 그 주제에 있어서 밀접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두 편지서의 주제이며 둘이 모두 결국에 가서는 “율법”과 “복음”과의 구별을 취급하고 있다(행 14:21-23).
남 갈라디아설의 근거를 좀 더 상세히 열거하면,
① 바울이 어떤 지역을 말할 때 아가야, 마게도냐, 일루리곤, 달마디아, 유대, 아시아 등 항상 행정지방적 명칭을 사용하였고, 바울이 갈라디아라는 말을 세 번 사용하였는데(고전 16:1;갈 1:2; 딤후 4:10) 그것도 행정지방적 의미일 것이라는 것. 그러나 행정지방으로서의 갈라디아는 서신의 수신자로서는 너무 광범위하다.
②사도행전에는 남 갈라디아에 대해 많이 말했는데, 바울 서신들 중에 그 지역에 대한 것이 없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곳은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거리이었다.
③ 사도행전에는 북 갈라디아 교회의 설립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갈라디아서 같은 중요한 편지가 그 곳을 위해 쓰였을 것 같지 않다는 것.
④ 유대땅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이 소아시아 남부 지역을 통과해 혹은 지나쳐 소아시아 북부의 옛 갈라디아 지역에 와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주후 49년경) 이후 남 갈라디아 지역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다른 이들은 본 서신이 정치적, 행정지방적 의미의 갈라디아, 즉 로마의 한 지방(도)으로서 브루기아, 비시디아, 루가오니
아 등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시 전도했던 소아시아 남부 지역의성도들에게 보내졌다고 본다. 이것을 남 갈라디아설이라고 한다. 헨리
디이슨은 이 견해를 취한다.

북갈라디아설 (3차여행중 기록설): 전통적견해
갈라디아는 지리적인 위치로 볼 때 로마령인 갈라디아의 북쪽 지역으로 바울이 이 지역에 여러 교회들을 세웠고 갈라디아서는 그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북갈라디아설은 여러 가지의 증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말의 통속적 사용을 볼 때에 북갈라디아 지역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가 사용한 행13:13,14과 행14:6 그리고 행16:6의 일반적 용법과 남갈라디아 여러 도읍들에 관한 누가의 설명, 행16:6과 행18:23의 의미를 볼 때에 갈라디아란 행정구역이 아니며, 제3차 전도여행 초기에 북쪽 지역을 방문했을 때 세운 교회라고 본다.그러나 북갈라디아설은 이제 남갈라디아설에 의해 매우 광범위하게 논박되고 있다.
갈라디아서 4장 13절에 의하면 바울은 갈라디아의 교회들을 이미 두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의 2차 여행이 끝난 뒤에 기록되었음이 분명하다. 만약 북 갈라디아설이 받아들여진다면, 갈라디아서는 3차 여행 이후에 기록되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의 1차 여행 동안에는 북 갈라디아의 교회들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이 기록된 시기는 A.D. 57-58년의 겨울일 것이다
북 갈라디아설의 근거를 좀더 상세히 샆려보면,
①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비시디아, 루가오니아 등 지리적 의미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고, 따라서 사도행전 16:6과 18:23은46) 바울이 북 갈라디아도 방문하였고 거기에 교회를 설립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② 갈라디아서 4:13에 바울의 육체의 질병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사도행전의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서는 그것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갈라디아서는 남 갈라디아에 보내졌을 것 같지 않다는 것,
③ 바울이 루가오니아인이나 비시디아인에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인이여’(갈 3:1)라고 표현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 등이다.